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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을 가진 나’

[내 마음을 움직인 책(30)] 박후임(진안군 귀농귀촌인협의회장)


... 편집부 (2015-08-28 09: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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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드혼 농장 이야기』, 핀드혼공동체 지음, 조하선 옮김,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11.

(사진=박후임)

1

핀드혼 공동체의 이야기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눈을 뜨게 해주었다.
인간중심, 물질중심의 세계에서 인간 안에 흐르는 내적 자아에게로,
보이는 물질세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생명의 세계에게로.
인간이 만물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알고, 그리 배우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핀드혼 공동체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해준다.

나무의 정령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꽃의 요정들과 속삭이며,
데바(선한 영)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과 더불어 만들어나가는 농장의 이야기.

가지치기도 나무와 대화를 해가면서 치고,
해충들의 존재조차도 그들을 몹쓸 것으로 여기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통해서 만나야 할 것들
보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찾는다.
자연과의 협력을 가장 중심에 놓은 공동체의 모습은 신성, 그 자체로 느껴졌다.

핀드혼 공동체원들은 ‘광물, 식물, 동물들과 함께 인간들은 지구라는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의 몸과 의식을 구성하고 있다’고 의식하며, 자연과 인간이 상호관련성 속에 있음을 인식하며 모든 일상생활을 한다. 책을 통해서 만나게 된 이들의 모습은, 이런 농장의 이야기는 내게 무척 큰 도전을 주어, 농사일을 할라치면 늘 숨을 고르게 된다. 내 안의 소리를 듣고, 보이고 들려오는 모든 것에 마음을 쓴다. 그래... 이렇게... 풀들과 나무의 정령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느끼면서 하는 농사가 진짜인 거야, 하며......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산다.

2

2015년 8월26일

배추를 심었다. 김장할 배추다. 우리의 밥상에 1년 내내 올라올 김치가 될.
비닐멀칭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안했다. 그냥, 심었다. 풀이 올라오면 매줘야지,
비닐을 하면 땅 속의 미생물이 힘들어할 테니, 하며. 내심 흐뭇해하면서 심었다.

나는 요즘, 파리를 엄청나게 죽였다. “얘들아, 밖에 있는 건 괜찮아~ 근데 우리 집 안으로 들어오면 안돼... 미안해...” 하며 파리채로 가차없이 후려친다. 탁... 파리가 죽는다. 하아... 살아있는 생명체인데. 나는 왜 이렇게 파리가 싫은 걸까?
반찬에 앉는 것이 싫다. 어디에 앉았다가 왔을지 모르는 파리가 우리 집안 여기저기에 앉으면서 혹시라도 안 좋은 것 묻혀 놓을까봐... 일어나지도 않은 것에 불안해하며, 그리 깨끗하지도 않은 우리 집, 우리 부엌에 있는 것이 싫어서 파리의 생명을 죽이는 나.
아무런 느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조금, 아주 조금 미안해하면서.
죽여버린다. 사랑이 없는 게다.
아니, 생명 귀한 줄 모르는 게다.

책을 읽고 나서, 그래 이렇게 사는 거야.
이 감동이 그리 오래가지 않음에, 내 스스로에 절망을 한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달라져가고 있음에 희망을 두어본다.


(▲ 출판사 제공 책표지)

※ 글쓴이 박후임은 서울에서 살다가 2005년에 진안으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 전북교육신문은 독자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하는 [내 마음을 움직인 책]을 연재합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