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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너머 세상 속으로

[아픈아이로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은 ⑥] 김하나 / 꿈사랑학교 학부모


... 편집부 (2016-09-16 22: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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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하나)

언제인가부터 전주에 여행갔다 사왔다며 수제 초코파이를 선물해주는 지인들이 늘었다. 또 날씨가 좋을 때면 전주 한옥마을에 다녀온 이들이 단아하게 한복을 차려입고 찍은 사진이 SNS에 곧잘 올라오곤 했다.
내가 상상했던 전주의 이미지는 고즈넉한 한옥의 모습이 무척 잘 어울리는 기품있는 도시였다. 그리하여 나는 그런 정감있는 장소에 조만간 꼭 가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전주를 방문하게 된 것은 그런 낭만적인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이제는 ‘전주’ 하면 속상함을 호소하던 부모들의 처절한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올해 6월 초였던 걸로 기억한다. 도현이가 화상수업을 듣고 있는 꿈사랑학교 학부모 밴드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6월 23-24일에 진행되는 <전국 건강장애학생 지원담당자 워크숍>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행사에 꿈사랑학교 학부모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원격수업 지원시스템 구축현황’을 안내하는 일정이 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6월 24일, 전국에 있는 100명 가량의 부모들이 새벽 2,3시에 일어나 전주 르윈호텔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석했다. 그 날의 주제는 건강장애 학생을 위한 원격수업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정작 건강장애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그에 대한 설문조사조차 진행한 적이 없다.
올바른 정책이란 그 정책으로 인해 수혜를 보게 될 대상에게 꼭 필요하고 적절한 정책이다. 현 화상수업 시스템에 대한 불만과 문제점은 건강장애 학생으로부터 나와야 하는 것이고 교육부는 그러한 단점을 개선하고 보완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충분한 정보수집과 검토의 과정을 밟는 것이 옳다. 그러나 건강장애 학생을 위한 원격수업은 정책 결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대상자의 의견이 배제되어 있다.
학부모들이 전주 워크숍에 참석한 까닭은 시위나 집회를 통해 교육부의 정책을 무산시키기 위함이 아니었다. 교육부 관계자들이 건강장애 학생의 현실적인 상황을 들어주고 그에 맞는 정책을 세워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크숍에서 학부모들이 자리에 앉자 그 장소에 있던 교육부 특수교육정책과 직원들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특수교육담당 장학관과 장학사, 특수학교 교원들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원격수업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한 마음에 워크숍에 참석했을 뿐이고 워크숍 담당자를 통해 참석의사도 밝힌 상태였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계획하는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요구한 것이 잘못일까? 그 날 일부 공무원은 학부모들을 향해 ‘명백한 공무집행 방해’라며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다.

전주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부터 집을 나설 때, 남편과 나는 어디에 무슨 일 때문에 가는 건지 도현이에게 말하지 않았다. 꿈사랑학교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 도현이에게 괜한 걱정을 하게하고 싶지 않았고, 설사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도현이에게 꼭 필요한 이 시스템을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분류하자면 실시간 화상수업도 원격수업의 일종이지만 수업을 듣는 학생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함께 놓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그 차이가 확연하다.

첫째, 화상수업은 학생과 교사 간의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지만, 원격수업은 교사의 일방적 수업이기 때문에 학생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수업에 반영하기 어렵다.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이 제기되며 토론 위주의 수업, 모둠별 프로젝트 수업 등 교사가 뒤로 물러나고 학생들이 주도하는 수업으로 교실이 변하고 있다. 건강장애 학생들만 시대에 역행하며 주입식 수업으로 돌아가라는 것인가?
아무리 이름난 스타강사의 강의라고 해도 강의를 듣는 모든 이가 그 내용을 100% 이해하기는 어렵다. 컴퓨터 앞에 앉아 강의를 듣다가 질문이 생기면 보통의 건강한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 혹은 학원 선생님을 찾아가면 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아픈 중에도 열심히 공부해 보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보지만 질문이 생겨도, 이해가 안 되어도 물어볼 선생님이 없기에 좌절감을 느끼게 될 것이 뻔하다.

둘째, 원격 녹화수업은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차단시킨다.
건강장애 학생들은 각종 질병으로 인한 건강상의 이유로 일반학교에 다니기 어려운 친구들이다. 대부분 면역력이 낮거나 체력이 약해 외출조차 자유롭게 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레 집에만 있는 날이 많아진다.
그러나 꿈사랑학교에 다니고 있는 도현이는 집이 학교이고, 집이 놀이터다. 꿈사랑학교 사이트에 접속해 수업을 하면서 선생님께 질문을 하기도 하고, 선생님과 아재개그를 주고받으며 까르르 웃기도 한다. 수업 내내 웃음소리와 조잘거리는 말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학생답지 않게 학원 스케줄이 없는 우리 아이들은 화상수업을 마치고 나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삼삼오오 놀이터로 모여든다. 그리고는 화상카메라를 통해 서로의 얼굴을 보며 기발한 아이디어로 놀거리를 만들어 낸다.
집 앞에 있는 놀이터에서 노는 것도 자유롭게 허락되지 않는 도현이에게 꿈사랑학교 놀이터조차 없다면, 선생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을 수 있는 그 작은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우리 도현이는 어디에서 친구를 경험하고 사회를 배워야 할까?
건강장애 학생들의 유급방지를 목적으로 존재하는 학교라고 할지라도 학교는 학교이다. 그리고 몸이 아파 일반학교에 다니지 못하더라도 학생은 학생이다. 학생에게는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모든 인간에게는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셋째, 원격 녹화수업은 학습에 대한 흥미를 저하시킨다.
현재 꿈사랑학교 사이트는 ‘다시보기’가 가능하게 되어있다. 병원에 가야하거나 실시간 접속을 할 수 없을 때 다른 친구들이 했던 수업이 녹화된 동영상을 다시 보는 기능이다. 그 수업을 들어야 출석이 인정되기 때문에 실시간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다면 꼭 듣게끔 되어있다.
그런데 나는 도현이가 ‘다시보기’ 동영상을 틀어놓고 의자에 앉아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수학수업을 빠졌더니 다음 진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며 수학수업만 몇 번인가 시청하던 것을 빼면 다른 과목 동영상은 한 번도 제대로 ‘다시보기’한 적이 없는 걸로 기억한다.
동영상만 틀어놓고 제 할 일을 한다. 한번은 왜 동영상을 보지 않는지 몰어봤더니 다른 애들이 수업하는 걸 보는 것은 재미가 없단다. 그리고 집중도 안 된단다.
입장 바꿔 생각해봐도 그럴 만하다. 큰 아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부모참관 수업을 갔던 경험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발표는 잘 하는지, 수업 시간에 태도는 어떤지 궁금한 마음에 참여하지만 20분 정도가 경과하면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그나마 저학년 때는 병아리같은 아이들 보는 맛에 그나마 견딜 만하지만 고학년 수업은 40분이 무척 길게 느껴진다.
원격수업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참여하지 않고 보기만 하는 수업이 과연 학습에 대한 흥미도를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까 싶다.


▲헤드셋을 쓰고 화상수업을 하고 있는 도현이의 모습이다.

뻔히 예상되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원격수업 추진을 백지화시킬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게 교육부의 입장이다. 화상수업 역시 폐지시킬 생각이 없으며 원격수업은 화상수업을 돕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이용하게 하겠다고 답한다.
그렇게 되면 교육에 대한 투자비용이 이중으로 발생한다. 화상수업에 드는 비용을 줄이자고 생각해 낸 방침이 원격수업 방식이다. 듣는 이가 개·돼지가 아닌 이상 이 말을 신뢰하기는 어렵다.
앞으로도 생겨날 수많은 건강장애 학생들은 화상수업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각 시·도교육청이 그들에게 원격수업의 장점만을 어필한다면 많은 학생들이 원격수업을 선택하게 될 것이고, 화상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수는 점차 감소하게 될 것이다. 이것의 결말이 화상학교의 폐교로 끝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교육만큼은 경제적 이윤추구라는 기업의 목적이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분야이다. 기존 화상수업에도 충분한 장점이 있고, 많은 건강장애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만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에서 원격수업을 도입하려고 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경제적으로 효율성이 낮기 때문이다.
전국의 건강장애 학생들은 1900여명 정도이다. 교육부의 입장에서 보면 이처럼 적은 수의 학생들을 위해 예산을 편성하고 교육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비효율적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그 돈을 줄이겠다고 정작 당사자들이 원하지도 않는 원격수업을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으니 말이다.
흔히 교육을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 몸이 아프고 약한 우리 아이들은 투자할 가치가 없다는 말인가? 지독히도 이기적이고 차별적인 시각이다. 설사 현실이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주고 희망을 주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런 교육을 만들고 책임지는 곳이 교육부이다.

도현이는 꿈사랑학교에서 수업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덕분에 수업이 있는 시간에는 할머니도, 엄마도 잠시나마 외출을 할 수 있다. 집에서 혼자 심심해할 도현이 생각에 발길을 재촉하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그 시간에 함께 집에 있어도 도현이는 친구들과 즐겁게 수업을 하느라 마치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외출하기 어렵지만 도현이는 모니터 너머에 있는 또다른 세상으로 외출을 떠난다. 그곳에 있는 선생님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며 우리가 함께 살고있는 세상 속으로 한발 한발 걸어오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도현이를 누군가가 가로막는다. 네가 오고 싶어하는 이 세상은 아픈 네가 감당하기에는 어렵고 힘든 곳이니 그냥 네가 사는 그 곳에 머무르라 말한다. 네가 살고 있는 그 곳에 재미있는 장난감을 넣어줄테니 그것 가지고 혼자 노는 것이 더 너에게 이득이라 말한다.
하지만 도현이는 외치고 싶다.
“이런 장난감 다 필요없으니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사는 그 곳에서 살고 싶어요.”

[글쓴이 김하나는]
가톨릭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후에도 꾸준히 문학을 가까이 하며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행복한 일을 하고 있다. 아픈 아이를 키우다보니 힘들 때도 많지만 덕분에 소소한 일상에 감사할 줄 아는 소중한 마음을 배우게 되었다. 평범하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