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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아픈아이로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은 ⑨] 김하나 / 꿈사랑학교 학부모


... 편집부 (2016-10-27 2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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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하나)

우리 가족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도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 때였다. 도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다는 긴장감과 설렘 때문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정신없는 한 달을 보냈다. 그러나 4월이 되자 누적된 피로로 인해 산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현이는 감기 등의 이유로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피곤하면 즉시 산증이 나타난다. 메틸말론산혈증은 이름처럼 피에 산이 섞여 나오는 병이다. 산 수치가 높아지면 구토, 처짐, 의식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아이가 못 먹고 처지기 시작하면 응급실로 달려간다. 그리고 병원에서 1주일 동안 수액치료를 받으며 안정을 찾으면 다시 1주일 동안 학교에 다닌다. 다음 1주일은 병원, 그 다음 1주일은 집, 이런 생활을 1년 동안 지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병원에만 입원하면 밥도 잘 먹고 잘 놀던 아이가 퇴원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식사량도 줄고 시무룩해진다. 집에 빨리 데려오고 싶어 퇴원 날짜를 하루라도 당기면 화를 내며 심통을 부린다.
집밥이 입에 안 맞나 싶어 최대한 병원 식단과 비슷하게 음식을 조리하고 병원 반찬을 싸와서 먹이기도 해 봤다. 심지어 병원 식판과 똑같은 식판을 구하고 환자복을 빌려와 집에서 환자복을 입히고 병원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주려 애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때는 중고로라도 병원 침대를 살까도 생각했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현이는 집에만 오면 밥을 안 먹기 시작했고, 산증이 진행되어 또다시 병원에 가야 했다. 억지로 먹여보기도 했고, 달래서 먹여보기도 했지만 그렇게 먹고 나면 곧바로 토하기 시작했고 산증이 더 빨리 진행된다. 메틸말론산혈증 환아에게 있어서 구토는 산 수치와 바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게 되면 마음의 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자신의 몸 상태를 병원에서 수시로 체크해주고, 혹시라도 피검사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곧바로 처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아파도 당장 처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하다.
게다가 학교에 가도 이미 도현이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모두 친해져 있는 상태다. 워낙 결석이 잦다 보니 학교는 늘 낯설고 새로운 장소이고 갈 때마다 부담감이 밀려온다.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곳은 병원 뿐이다. 갑자기 식욕이 없어진다.
나는 물론 도현이가 치밀하게 머릿속으로 이런 것을 계산해 일부러 아프고, 일부러 혈액 속의 산 수치를 증가시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도현이의 몸이 본능적으로 이런 상황을 위기라 인식하고 그에 맞게 반응한 것에 더 가깝지 않을까?

어쨌든 우리는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했고 소아정신과 진료를 받기로 했다. 검사를 진행하고 몇 번의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정신과 상담이 도현이에게 크게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고 무엇보다 정신과 진료는 병원비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컸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 후로 가정간호라는 제도를 통해 집에서도 수액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화상수업이라는 제도를 통해 학교에 가지 않고도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원인이 제거되면서 도현이의 마음의 병은 서서히 나아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병원에 입원하는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물론 감기에 걸리거나 피곤하면 입맛이 떨어져 밥을 거의 먹지 않지만 며칠 동안 수액을 맞으면 곧 좋은 컨디션으로 회복된다.

사실 마음의 병은 도현이에게만 찾아온 게 아니었다. 고백하기 조심스럽고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나에게도 공황장애라는 병이 있다.
힘들 때 힘든 티도 내고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약한 모습도 보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성격상 다른 사람에게 나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내가 강해야 도현이도 강하게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매일매일 나를 다그쳤던 것도 같다.
공황장애 증세라는 게 예고도 없이 느닷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난 늘 불안했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오면 호흡이 빨라지고 손발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이러다 곧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감이 밀려온다. 증세가 심할 때는 기절해버린 적도 몇 번 있다.

정신병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에 난 스스로 집 근처에 있는 심리상담 센터를 찾았다. 반드시 공황장애라는 적을 멋지게 이겨내겠다는 다짐을 하고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선생님의 추천대로 10회분의 상담을 받아보기로 하고 상담료를 결제했다. 심할 경우 약을 복용해야 하지만 다행히도 그렇게 심한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백만 원이 조금 덜 되는 상담료를 지불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열심히 상담을 받았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나 자신의 힘듦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거의 없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정신적인 질환을 조금씩 갖고 있다고 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고 분주한 일상을 살아보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자신의 마음에 대해 잘 모르고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하니 결국 나처럼 곪고 곪아 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를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내가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아픈 아이를 키우는 우리 부모들이 나의 이야기에 공감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픈 아이를 키우다보면 365일 중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쉴 날이 없다. 쉬는 것처럼 보여도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아이의 눈빛 하나, 숨소리 하나에 집중하고 있다. 투병생활이 길어질수록 이런 긴장된 하루하루의 연속인데 몸인들 마음인들 지치지 않을 리가 없다.
많은 부모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잠시라도 아이에게 향했던 예민한 나의 안테나로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픈 아이를 두고 내 시간을 갖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던 많은 엄마들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1주일에 한 번, 아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아이와 분리되어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고,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아이가 잘 때 읽고 싶었던 책을 보거나 일기를 쓰며 내 마음 속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종교가 있다면 경전을 읽으며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병원에 입원해 있다 보면 아이의 투병 생활이 길어질수록 정신적으로 견디기 어려워하는 부모들을 종종 본다. 하지만 아이가 아픈 상황에서는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모가 스스로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다.
그런 부모들을 볼 때마다 직접적인 치료비 지원도 물론 필요하지만 환아의 가족들에게 심리적으로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심리상담 센터가 설립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먼저 부모의 마음이 건강해야 우리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기를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은 비록 현재는 몸이 아프지만 앞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구성원으로서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와 아이 가족에 대한 지원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며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도현이는 이제 곧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내년부터 중학생이 된다. 반별 졸업사진을 찍는다기에 오랜만에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만났다.

[글쓴이 김하나는]
가톨릭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후에도 꾸준히 문학을 가까이 하며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행복한 일을 하고 있다. 아픈 아이를 키우다보니 힘들 때도 많지만 덕분에 소소한 일상에 감사할 줄 아는 소중한 마음을 배우게 되었다. 평범하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