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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4 21:47:42

이카로스(Icaros)의 날개

[홍순천의 ‘땅 다지기’⑪] 홍순천(진안 봉곡마을)


... 편집부 (2016-11-23 14: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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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홍순천)

눈이 내릴 듯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 산비둘기 날갯짓이 분주하다. 바람을 가르며 지나는 산새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산골엔 소설(小雪)이 지났지만 아직 눈이 내리지 않았다. 찬 서리를 뒤집어쓴 배추를 거둬들이고 나서야 텃밭은 텅 비었다.

새들을 바라보면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다이달로스(Daedalos)와 이카로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명장(名匠)이라는 뜻의 다이달로스는 건축과 공예의 명인으로 존경받았다. 대장간의 신(神) 헤파이스토스의 자손이며 아테네여신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그가 만든 조각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다고 한다. 한마디로 신의 손이다. 탁월한 재주가 결국 자신의 손으로 만든 미궁(迷宮)에 그를 가두게 되었다.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미궁에 갇힌 그는 탈출을 도모한다. 온갖 새들의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붙여 커다란 날개를 만들었다.

날개를 어깨에 붙이고 하늘로 날아올라 탈출에 성공한 이카로스는 자유를 만끽했다. 다이달로스는 그런 아들이 불안했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이 밀랍을 녹여 추락할 것이고 너무 낮게 날면 파도가 날개를 적셔 너를 삼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젊은 이카로스는 힘껏 날개를 저어 태양 가까이 올라갔다. 태양열에 날개가 떨어져 나간 이카로스는 에게해에 떨어져 죽었다. 이카로스가 빠져 죽은 바다가 ‘이카리아 해(海)’다.

‘이카로스의 날개’는 지나친 욕망이 자초한 화를 상징한다. 욕심이 지나치면 죽음에 이른다는 말씀은 진리다. 그동안 복지와 문화를, 창조라는 허상으로 교묘하게 포장해 대한민국에 낚싯밥을 던진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은 통째로 세상을 말아먹고 있었다. 꼬리가 길면 필시 밟히게 되어있으니 오래 살지는 못할 팔자다. 아무리 감추려 애써도 감출 수 없는 꼬리를 가진 무리들은 아직도 자기최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헌법과 질서, 일반적인 규칙쯤은 깡그리 무시하고 그들만의 방법으로 나라를 말아먹은 작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어도 그들에겐 안중에도 없는 얘기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뒤집고, “내가 뭘 잘못했어?” 순진무구한 아이들처럼 되묻는 것을 보자면 필시 뇌가 없는 짐승임이 틀림없다. 광화문 거리에 촛불과 함성이 가득해도 상황 파악을 못하는 이유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어찌 보면 뇌 없는 짐승이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철학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작정하고 사기를 치고, 온 국민이 그에 놀아났다는 사실에는 치가 떨린다. 어떤 변명을 늘어놓아도 용서할 수가 없다. 용서를 빌기커녕 뻔뻔하기까지 하다.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보고 살기오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지존을 만났다. 최고다. 이런 괴물을 만든 것은 결국, 오래전부터 습관 된 세상의 구조와 이를 용인해 온 국민이다. 돈이 실력이다. 권력도 학벌도 사랑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칼자루를 쥐어 준 우리 모두가 공범이다. 도둑년에게 도둑년이라고 말하지 않고 침묵해 온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낸 현실이다. 욕망의 날개에 편승해 떡고물을 기대한 우리 모두가 달고 있던 ‘이카로스의 날개’가 세상을 추락시켰다.

겨울이 깊어진다. 불면증이 두통을 데리고 와서 피곤한 몸이 한껏 게으르다. 곧 눈이 내리고 땅이 얼어붙을 텐데, 아직도 내년 봄에 거둘 양파와 마늘을 심지 못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피로도가 높아서 게을러졌다는 핑계는 이제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시간이 없다. 서둘러 거름을 펴고 마늘과 양파를 땅에 넣어야겠다. ‘온 마음을 다하면 우주의 기운이 돕지요.’ 조금 늦었다고 염려할 일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새로운 내일을 여는 씨앗을 뿌리고 잘 가꾸어야 무사히 겨울을 나고 봄을 맞을 수 있겠다.


▲지나친 욕망으로 스스로를 멸한 이카로스. 네덜란드 화가 헨드리크 골치우스 작 ‘이카로스’(1588년).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