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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드림: 호랑이똥은 멧돼지를 쫓았을까

[책] 기자들의 취재기·뒷얘기 - 독립언론이 기록한 광주 15년


... 문수현 (2018-08-10 14:16:44)

호랑이똥은 멧돼지를 쫓았을까
- 광주드림 취재기·뒷얘기, 도서출판 이엉, 2018.7

광주에 기반을 둔 독립언론 광주드림이 창간 15주년을 맞아 기자들의 취재기를 책으로 엮어냈다.

광주드림 전·현직 기자 18명이 창간 당시인 2004년부터 2016년까지의 기사들 가운데 스스로 가려 뽑은 24편에 대해 현재 시점에서 취재기 형식의 ‘뒷얘기’를 덧붙였다. 기사모음집이 아니라 취재 뒷얘기를 중심에 둔 ‘취재기’라는 점이 특징이다.

‘그때 그 기사가 탄생하게 된’ 전후 사정을 기자 스스로 회고하며 쓴 글들인 셈인데, 특종을 벼려낸 기자들의 남다른 직감과 직업정신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김창현 기자의 ‘교사들 행사에 앞치마 동여맨 학부모들’은 기자가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교사들의 배구경기가 한창인 모습을 우연히 발견한 데서 시작된다. 기자는 운동장 한쪽에서 앞치마를 두른 여성 20여 명(학부모로 밝혀짐)이 교사들을 위해 음식물과 술병을 치우고, 행사가 끝난 뒤 교사들의 뒤풀이 술상까지 봐주는 모습을 남다른 시선으로 지켜봤다.

교사들은 이를 두고 “사람이 살면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은 없다”고 합리화했고 (기자가 이후 취재한) 예비교사인 교대생 10명 중 1명만 그에 대해 “잘못된 관행이다”라고 했다. 게다가 현장에 있던 학부모들도 “뭐가 문제냐?”는 반응을 보였다. 관련된 다수가 “문제없다”는 반응을 보인 셈이다. 하지만 기자는 학부모들의 ‘따까리’ 장면을 기사로 써 경종을 울렸고, 나아가 학부모가 학교에 얽매인 구조를 바꾸기 위한 대안으로 ‘학부모회의 법제화’라는 나름의 대안까지 제시했다.

채정희 기자(현 편집장)가 쓴 ‘호랑이 똥으로 [ ]를 쫓는다’는 당시 산간 농민들이 옥수수나 고구마 같은 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멧돼지들을 쫓기 위해 ‘동물의 왕’인 호랑이 대신 그 똥이라도 동물원에서 얻어다 가져다 놓은 사실을 포착했다. 기자는 그런 사실을 보도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과연 호랑이 똥이 실제로 멧돼지를 쫓아내는 효과를 발휘했는지에 궁금증을 가지고 그 뒷이야기를 취재했다.

경찰이 집회현장에 ‘전·의경 어머니회’를 관제 동원한 사실을 고발한 2006년 홍성장 기자의 기사도 특종 기사를 쓰기 위한 기자의 땀과 열정이 드러나는 기사다. 기자는 어머니회 시위 현장에 ‘잠임 취재’했다. 취재 과정에서 ‘의경 어머니 광산 화물연대 집회 참관 지시’라는 제목의 경찰 공문을 한 회원이 꺼내 보여줬다. 순순히 문건을 얻어낼 자신이 없었던 기자는 냅다 공문을 손에 쥐고 튀었다. 결국 수십 명에 에워싸여 빼앗겼지만, 꼬깃해진 문제의 문건은 방송국 기자의 카메라에 담겨져 관제시위의 ‘결정적 증거’로 세상에 폭로됐다.



이밖에도 많은 취재기를 통해 독자들은, 어떤 사건을 접했을 때 기자들이 가지는 궁금증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사례들을 감탄과 함께 재미있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취재기를 통해 기자들의 직업정신과 취재기술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 실린 기사와 취재기를 읽어보면 광주드림이 독립언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는 권력을 비판하고, 불의를 폭로하며, 약자를 대변했던 15년의 기록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다른 장점도 있다. 기사 작성 요령을 안내하는 다양한 책들이 출판돼 있고 기자 개인의 특별한 취재기가 종종 나오기도 했지만, 이렇게 여러 기자의 취재기를 한 데 모아 꾸민 책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신문·방송 기자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교육적인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