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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후반 300년 수사기록 『추안급국안』 출판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 10년간 번역, 90권으로 펴내...조선사회사 연구 ‘전기’


... 문수현 (2014-09-28 22:53:47)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소장 변주승)가 2004년 처음 번역을 시작한 이후 10년 만에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을 완역해 『국역 추안급국안』 전 90권을 간행했다.

『추안급국안』은 선조 34년(1601)부터 고종 29년(1892)까지, 17세기 초에서 19세기 말까지 약 300년 동안 변란, 역모, 천주교, 왕릉 방화 등에 관련된 중죄인들을 체포·심문한 기록이다.

심문 대상자는 신분상으로 양반에서 노비까지, 직역으로 관료와 상인 및 농민과 궁녀 등이 망라되어 있으며, 당시의 사회적 모순과 갈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추안급국안』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등 다른 역사서에서 요약·압축된 사건이나 내용들을 심문과 진술 형태로 가감없이 자세히 수록하고 있다.

각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실체적 진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간관계, 특히 베일에 싸여있던 궁중 내부의 갈등은 조선 후기 역사적 사건의 속살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해준다.



한국고전학연구소는 『추안급국안』 완역은 『조선왕조실록』 국역사업의 뒤를 잇는 쾌거라며, 『추안급국안』을 바탕으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된다면 조선 후기 역사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번역은 2004년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에서 공모한 ‘기초학문육성 인문사회분야’의 지원 과제로 수행됐으며, 번역문은 200자 원고지 15만 매의 규모로, 고전번역의 단일 사업으로는 최고의 결과물이다.

번역에는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사상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번역은 변주승(연구책임자, 전주대), 김우철(한중대), 조윤선(한국고전번역원), 이상식(고려대), 이향배(충남대), 이선아(전북대), 허부문(서강대), 오항녕(전주대), 서종태(전주대), 문용식(전주대) 등 전문 번역자와 전주대 사학과 대학원의 연구보조원 등 약 30여 명의 인원이 참여했다.

번역팀은 개별 번역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번역 수준의 질적 제고를 위해 다양한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는 한편, 특히 호남의 대표적인 한학자인 고(故) 산암(汕巖) 변시연 선생과 대전의 아당 이성우 선생 등으로부터 어려운 한문을 자문 받았다고 밝혔다.


(사진=추안급국안 번역팀. 좌로부터 이상식(고려대), 여자분(번역팀 아님), 허부문(서강대), 이향배(충남대), 서종태(전주대), 이선아(전북대), 김진소 신부(전 호남천주교회사연구소 소장), 조윤선(한국고전번역원), 김우철(한중대), 문용식(전주대), 변주승(전주대), 오항녕(전주대))

26일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와 전북사학회는 공동으로 ‘추안급국안을 통해 본 추국청의 운영과 반역사건’이라는 주제로 <『추안급국안』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다음은 이날 조광 한국고전문화연구원 원장(고려대 명예교수)이 발표한 기조강연 <연구번역 『추안급국안』 출간의 의미>의 주요 내용이다.

▲ 『추안급국안』 출간의 역사적 의미

『추안급국안』은 조선 후기 의금부에서 주관했던 각종의 재판기록을 말한다. 특히 이 재판기록은 임진왜란 이후 1601년(선조34)부터 1892년(고종29)까지 조선 후기 약 300년 동안에 발생했던 279건의 범죄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이 『추안급국안』은 331책의 필사본 책자로 묶여져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규장각도서 no.15149). 여기에 수록된 사건 관계의 문서 수는 모두 12,589건이다. 이는 한 사건당 평균 45건의 문서나 신문기록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추안급국안』에는 각종의 ‘범죄 사건’에 연루된 12,000여 명에 대한 심문기록이 담겨져 있다.

원래 범죄라고 할 때 그것은 사회적 일탈행동(social violation)을 뜻하는 단어이다. 우리 역사는 사회의 기존 질서를 침해하여 무너뜨리는 행동을 범죄로 규정하여 이를 처벌했다. 그래서 범죄자에 대한 처벌 기록인 『추안급국안』은 국왕에 대한 역모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이에 준하는 각종의 변란이나 당쟁, 정변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의금부는 원래 양반 지배층의 범죄나 조선왕조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삼강오륜(三綱五倫)에 대한 위반행위인 강상죄(綱常罪)를 다스리던 곳이었다. 그래서 이 문헌에는 서학 즉 천주교 사건이나 각종의 비결류 사건들도 포함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하여 『추안급국안』은 조선 후기 사회를 뒤흔들던 큰 사건들이 모두 모여져 있는 기록이다.

그런데 범죄는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 도전은 역사의 역동성을 더해 준 사건들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 행동이었다. 『추안급국안』에 등장하는 범죄자들의 경우를 보면, 그들은 최고위층 양반 지배자들로부터 최하의 천인 신분에 이르는 노비나 승려들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즉, 이 『추안급국안』에는 치자와 피치자와의 모순ㆍ갈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으므로 조선 후기 민중운동사 연구를 위해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심문 대상자로 양반, 중인, 상민, 노비 등 사회의 모든 신분층이 망라되어 있고, 또한 관료, 상인, 공장, 농민 등 모든 종류의 직업인이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그들이 일생생활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그들의 처지가 어떠한지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이 『추안급국안』 안에 조선 전통 사회의 축도판(縮圖版)이 들어 있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자료를 통해 정권을 둘러싼 양반 지배층의 권력투쟁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는 민중의 생활상과 그들의 사상 그들의 꿈과 소망을 정확이 알려 주는 문헌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민중들은 자신의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민중들은 집권층의 기록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조선 후기의 민중들도 이 『추안급국안』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문헌에 사건이 기록되던 당시에 그 기록된 사건은 모두가 범죄였다. 그러나 오늘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새로운 사회를 향한 역사의 힘찬 북소리였다. 그들의 이른바 범죄행위를 통해 우리는 당시의 정치사나 사회사의 진실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그때 그들이 향유했던 경제사나 사회사에 가장 사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료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당시의 지배층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들의 생활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며,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과 그들의 심성(mentalite)을 드러내 준다. 이 자료를 통해서 오늘의 연구자들은 특정 시대와 사건의 전후 사정과 자세한 전개 과정을 알게 되며, 역사적 상황을 정확히 복원하여 이를 교훈으로 삼아 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추안급국안』은 조선왕조실록 못지않은 민족의 고전이며, 마르지 않을 지혜의 샘이다.

한편, 우리는 이 『추안급국안』을 통해서 조선 시대 언어와 음차(音借) 표기를 이해하는 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자료는 심문 내용을 직접 기록한 것이어서 음차한 내용도 많을 뿐더러 이두(吏讀) 사용이 빈번하다. 이를 정리함으로써 이 『추안급국안』은 우리 국어사의 연구 발전에도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어사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풍속사, 여성사, 교회사 등 특수사 영역의 연구에 있어서도 『추안급국안』은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자료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이 『추안급국안』은 정통 한문으로 기록되었다기보다는 당시 아전층에서 주연번역 『추안급국안』 출간의 의미로 쓰던 속류(俗流) 한문으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정통 한문에 능통한 역사연구자라 하더라도 이 자료를 읽고 활용하는 데에는 언제나 오독(誤讀)과 오역(誤譯)의 가능성이 따랐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는 일부 연구자만 부분적으로나마 이를 사료로 활용하는 데에 그쳐왔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제 이 중요한 문헌자료가 전주대학교와 한국고전문화연구원의 연구원들에 의해 번역되어 나오게 되었다. 이 번역 작업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철저한 주석과 연구를 겸한 본격적 연구번역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한국사학계를 비롯하여 우리의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번에 이룩된 연구번역 『추안급국안』이 간행된 의미를 다시 한번 간추려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선 이번의 연구번역을 통하여 우리는 조선 후기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상 등 각 분야에 있어서 많은 사건과 상황에 대한 역사적 복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즉, 『추안급국안』은 다른 역사서에서 요약ㆍ압축된 사건이나 내용들을 심문과 진술 형태로 가감 없이 자세히 수록하고 있다. 각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실체적 진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간관계, 특히 베일에 싸여 있던 궁중 내부의 갈등은 조선 후기 역사적 사건의 구체적 내용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해 준다. 또한 이 연구번역된 자료를 통해서 조선 후기 역사 전반에 대한 복원을 통해서 조선 후기 역사를 새롭게 조명해 나갈 수 것이다. 즉 이 자료의 간행은 조선 후기사 전반에 관한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해 줄 것이다.

연구번역 『추안급국안』의 간행이 갖는 두 번째 의미는 한국 문화에 대한 학제 간의 연구(inter-disciplinary)를 촉진시킬 있다는 점이다. 역사학은 여타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과의 그침 없는 대화와 교류를 통해 문화 전체를 풍요롭게 해 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역사학이나 한문학 등 극히 일부 분야의 학문을 제외하고서는 한문으로 작성된 우리 자료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이들을 위해서는 역사적 자료들이 번역 제시되어야 한다. 이제 『추안급국안』이 번역됨으로써 여러 분야의 사회과학자나 기타 인문학자들도 『추안급국안』을 자신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는 학제 간의 연구를 더욱 촉진시키고 학문의 융합과 재해석에, 그리고 한국적 사회과학 이론의 개발에 활용될 수 있게 되었다.

그 세 번째 의미는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통문화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없다면 현대문화의 건강성은 보장될 수 없다. 이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문화를 재창조하게 된다. 우리의 전통문화는 우리가 세계의 문화계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중요한 아이템이다. 따라서 『추안급국안』의 번역은 이러한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자료의 출현을 뜻한다. 문화의 계승과 재창조를 통해서 우리는 세계사 속에서 문화 국가로서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다.

이번의 번역 간행 작업이 갖는 네 번째의 의미는 한국학의 세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외국의 연구자들은 원사료를 국내의 학자들처럼 접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그 사료가 정통 한문이 아닌 이두 투성이의 문장인 경우 그들에게 이는 접근 불가능한 꿈속의 자료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외국의 연구자들도 책임 있는 번역본을 통해서 우리의 주요 자료인 『추안급국안』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써 한국학이 세계 도처에서 연구되어 우리 문화에 대한 더욱 풍성한 이해를 세계 인류에게 제공해 주게 되었다.

연구번역 『추안급국안』의 출현은 역사문화 콘텐츠의 개발과 문화산업의 진행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 점이 이 책이 간행된 다섯 번째 의미이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추안급국안』에는 279건의 역모사건에 연루된 12,000여 명의 심문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그 심문조서는 조선 후기의 사회상과 함께 인적 네트워크의 구성에 대한 지식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이 자료는 유언비어의 형성과 전파 양상을 밝혀 줄 수 있으며, 다양한 직업의 실태와 생활상 등을 구술 기록의 형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이를 통해서 스토리의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의 문화콘텐츠나 문화산업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미래의 한류 열풍을 몰고 올 수 있는 무한한 자료들이 들어 있다. 상당한 경제적 가치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요컨대, 우리는 『추안급국안』의 간행을 통해서 학문적 연구의 심화와 전문화를 더욱 촉진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번역은 『추안급국안』의 내용에 대한 디지털화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따라서 이를 통해서 정보화를 촉진시키게 될 것이다. 이번에 간행된 『추안급국안』은 우리 역사문화에 대한 대중화와 산업화에까지도 기여할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