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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인내가 피우는 강한 꽃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①] 설연화 / 시인·수필가


... 편집부 (2015-01-05 17:3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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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있어 부모란 성장의 밑거름이다. 특히 부모의 인격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양분이 되고, 엄마의 성격은 아이들의 성격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세상 그 어떤 일보다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바르게 성장시킨다는 것은 더욱더 힘든 일이다. 그러나 지금 힘들게 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조금은 더 쉬운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좀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다. 대학생 과제물을 부모들이 대신하고, 제출도 부모가 하는 경우가 많다는 뉴스를 봤을 때 학생들보다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부모가 더 문제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의지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부모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다만 부모의 인내와 주변에서 제대로 된 시각은 필요하다.

내 주변에 아이 키우는 것에 대해 조언을 해 줄 사람은 없었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육아교육법이 나와 있는 서적이나, 육아 수첩 등에 가끔 나와 있는 조언들이 전부였다. 육아 수첩에 있던 문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이에게 자립심을 길러주세요.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아이들이 가장 먼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신발을 신거나, 옷을 고르거나, 옷을 입는 일들일 것이다.

아이들이 세 살, 다섯 살 되던 때쯤이었다. 저녁 6시에 가족 모임이 있어 아이들을 씻기고 준비를 하는데 2시간 전부터 시작이 되었다. 둘의 목욕을 시키고 안방으로 들어가면 아이들은 분주하다. 자신이 오늘 입을 옷을 고르느라 옷장에 있던 모든 옷을 온 사방에 다 헤쳐놓는다. 그러나 나무라지 않았다.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들은 파란색의 옷을 고르고, 딸은 노란색 옷을 골랐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웃고만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딸은 내 눈치를 살피더니 안방을 휘이 둘러보았다. 온 사방이 자신들의 옷으로 가득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엉성하게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섯 살짜리 아이가 정리하는 것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손을 대거나 도와주면 엄마가 당연히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자기 옷을 모두 정리하더니 세 살짜리 아이를 바라보는 딸의 모습이 보였다. 그 어린 나이에 한숨을 내리 쉬더니 또 쪼그리고 앉아서 동생 옷을 정리했다.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지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차피 아이들이 보지 않을 때 다시 정리해야 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보는 순간에는 정리하지도 않고 도와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 그림 = 임솔빈 )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22개월 된 아이가 혼자 양말을 신는다며 낑낑거리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딸아이는 그래도 누나라고 먼저 제대로 신고 동생 양말 신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태훈아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양쪽을 이렇게 잡고 발가락을 벌이지 말고 모아, 아니, 아니 발가락에 힘을 꽉 줘 봐. 그리고 양쪽 끝 잡았잖아? 쑥 올려. 아니 바보야 그게 아니고…. 에잇 몰라 너 알아서 해!”
어느새 내 흉내를 내고 있는 딸아이를 보았다. 그러다가 제 화에 못 이겨 뒤돌아서서 옷을 입었다. 역시 앞뒤를 바꿔 입고 어색한지 다시 벗는다. 난 아들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태훈이 양말 신어?”
“응!”
“발가락이 자꾸 양말에 걸리네? 발가락 오 형제가 사이가 안 좋은가 봐. 그렇지? 그러니까 서로 멀리멀리 떨어져 있는 거지?”
아이는 말똥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큰 형 발가락, 둘째 형, 셋째 형, 넷째 형 그리고 막내! 막내가 태훈이인가 봐 아주 조그마하고 귀여워. 그런데 형이랑 친하지 않으니까 자꾸 양말에 걸리네?”
아들은 빤히 자신의 발가락을 바라보더니 발가락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하더니 이내 양말이 쏙 들어가자 환하게 웃으며 나를 안고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30분이 지났다. 이제 관문 하나를 통과한 것이다.
그렇게 옷을 모두 갖춰 입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아이들의 옷을 대충 옷장에 넣어두고 현관으로 나갔을 때, 아이들은 이미 신발 신기에 도전하고 있었다. 현관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병아리 두 마리가 봄 햇살에 앉아 있는 모습과 비슷하기도 했다.

딸아이가 다 신었다며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오른쪽 왼쪽이 바뀌어 불편해 보였다.
“자영이 발 아프지 않아?”
“엄마, 나 제대로 신었어?”
“아니, 지퍼가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가야 하는데?”
딸아이는 다시 자리에 앉더니 오른쪽 왼쪽을 바꿔 신었다. 그리고 지퍼를 올리더니 뛰는 시늉을 해 보인다. 아들은 끙끙거리다가 이내 나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신발을 신고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양말을 신을 때처럼 발에 힘을 주다가 보니 발가락이 모두 쫙 펴져 있어서 신발 안으로 발이 들어가지 않았다.
“발가락 오 형제가 또 싸웠나 봐. 서로 멀리멀리 떨어져 있네? 태훈이 발가락이 더 화가 났나? 자꾸 운동화 밖에서 놀고 싶어 하네?”
어렵사리 운동화에 발을 넣었지만, 오른쪽, 왼쪽이 바뀌었다. 다 신었다며 아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아이는 밖으로 나가자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아니야, 지금 태훈이 이렇게 신발 신고 걸으면 조금 가다가 꽈당 넘어질 건데 괜찮아? 무릎에서 피도 날 건데? 엄마는 안 일으켜 주는데? 누나도 호~ 해주지 않을 건데?”
아들은 다시 바닥에 주저앉아 신발을 벗었다. 벗기는 했지만 바꾸지 못하고 왼쪽, 오른쪽을 바꾸어서 같은 발에 넣으려 했다.
“태훈이 아까랑 똑같이 신발 신고 있는 건데?”
신발 양쪽을 어렵사리 바꾸었지만, 다시 발가락이 펴져 있어 운동화에 들어가지 않았다. 또 반복이 되었다. 나는 시계를 자꾸 바라봤다. 남편이 오면 아이들을 기다리고 인내하는 따위는 하지 못한다. 말이 떨어지면 5분 안에 모든 것이 해결되어야 하고, 남들보다 20분 먼저 약속 장소에 가야 했다. 거의 도착할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음은 조급했지만 아이는 신발을 제대로 신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낑낑거리고 있었다.

왼쪽 신발을 신고, 오른쪽 신발을 발에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문이 벌컥 열리며 남편이 들어왔다.
“밖에 나와 있어야지.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벌써 40분이야!”
남편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의 신발을 신겨 안고 밖으로 나갔다. 또 실패다. 결국, 아이는 성공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외출을 해야 했다. 딸아이가 조용히 속삭인다.
“나는 혼자 다 했는데….”
“그러게 아빠가 도움이 안 되네?”
그러나 외출은 꼭 가족 모두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과 외출할 일은 많았기에 그때마다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는 여유는 있었다. 모임에 다녀와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다시 옷 정리를 하고, 양말 정리를 하고, 장난감 정리를 해야 했다. 스스로 하게 내버려두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처음부터 내가 정리하거나 옷만 꺼내주면 간편한 일이지만,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정리하고,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어릴 때부터 길러주기 위해서는 내가 힘든 것은 조금 참아야 했다.

다음 날이면 또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아이들은 밖에 나가고 싶어 했고, 그때마다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시간은 단축되었고, 나의 일은 하나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유치원 다닐 때쯤에는 딸아이는 내 손길이 필요하지 않았다. 세수를 하고, 양치하고 머리를 감는 것까지 서툴지만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하게 옷 입고, 머리 감는 일로 끝나지는 않았다.
대학입시 준비할 때도, 딸아이는 나에게 의견을 구했지만, 결정을 원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가고자 할 방향을 확실하게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엄마가 바라보는 딸의 성향에 대한 의견을 구할 뿐이었다. 아들은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대학이라는 것에 의지가 없었다. 그러나 필요성을 느꼈을 때, 성적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대학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결국 원하는 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한테 대학가고 싶다는 소리 안 했잖아?”
“엄마한테 말해도 내가 공부를 안했는데 해결이 되나? 그래서 뭐 여기저기 뛰어다녔지. 운동하면서도 대학을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좀 찾아봤지. 그리고 아르바이트할 때 알게 된 그 학교 교수님 도움이 좀 컸어. 나 예쁘게 봤나 봐. 교수추천 해주시던데?”
아들의 가장 큰 재산은 인맥이었다. 또래 인맥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어른들이 아이를 인정해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다. 어려운 일에도 당황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점을 찾아내는 것이 많은 인맥을 만드는 결과가 된 모양이다.

아파트상가 어느 가게 주인은 내가 갈 때마다 아들에 대한 칭찬을 빼놓지 않는다. 그의 인사다.
“아따, 그놈은 사막 한가운데다가 혼자 놔둬도 살아갈 놈이랑께요. 요즘 세상에 그런 놈이 어디 있다요. 봐바 군 제대한지 얼마나 됐다고 오자마자 아르바이트부터 하는 거”
“어찌 아셨어요?”
“엊그제 가게 왔길래. 제대 했응께 푹 좀 쉬다가 학교 가야것네? 했드만 벌써 아르바이트 댕긴다고 허더만요. 대학 등록금 보탠다고. 지그 부모가 가난한 것도 아닌디, 세상에 그런 놈 요즘에 어딨다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모가 인내해야 할 일들은 많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지 않는다. 부모의 향기 아래서 부모의 인격을 양분 삼아 꽃을 피운다. 부모가 인내하고 추운 겨울을 기다리며 관심을 가진 아이는 강하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만, 부모의 의지로, 부모의 명령으로 키워진 아이들은 화려할지 몰라도 금세 시들어버리고 약한 꽃을 피운다. 세상 어디에 던져놔도 스스로 해쳐나갈 수 있는 강함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 연재를 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