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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6-30 21:09:29

[설산 최재은 칼럼] 풍수지리로 본 전라도와 전주


... 편집부 (2024-06-27 23: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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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 바로알기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우리 땅 바로잡기)

우리가 어떤 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작은 관심은 점점 더 상대를 파악하고 알아가려는 노력으로 발전하여 사랑은 무르익어 가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진실 되게 알아가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 파악의 전제 속에서만 그 사랑은 지속될 수 있고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애국심은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을 갖는데서 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우리고장을 사랑하는 애향심 또한 우리고장을 얼마큼 알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현재 문화재청장으로 있는 유홍준 씨는 교수시절 쓴 “나의 문화 답사기”라는 책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그 말에 빗대어 나는 감히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라고 말 하겠다. 이제 진실 되게 이 땅 바로알기는 넓게는 우리국토 바로알기의 단초가 될 것이며, 작게는 우리고장 향토 바로알기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가히 주장한다.

우리 사단법인 한단사상연구소(桓檀思想硏究所)는 이런 목적과 취지로 지난 99년 창립이래로 지속적인 우리 땅 바로알기 강연을 시작하였으며 나아가 우리 땅 바로알기위한 현장답사회인 현무답사회(玄武踏査會)를 조직하여 우리고장(전라북도)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답산을 매년 6회(봄3회 가을3회)씩 실시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고장(전라북도와 전주)에 대한 풍수 지리적 관점을 갖는 것이야말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실시하는 도민대학의 전라북도에 대한 발전적이고 높은 취지에 가장 부합되는 주제중의 하나라고 생각되어 이러한 주제를 선택했다. 그리고 감히 졸렬한 재주이지만 전북지역발전에 조그마한 초석이라도 되었으면 다시 바랄 것이 없겠다.


우리의 영토 관점을 반영한 풍수 논쟁 역사.

아! 삼두일족금오조여~.

지난 무인년(戊寅年-1998) 여름 나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올랐다. 멀리 돌아서 심양을 거쳐서 기차를 타고 옛적 우리 조국 발해의 땅을 넘어서, 현재는 중국지나(中國支那)의 땅이라고 하는 만주벌판을 지나서, 백두산에 오를 때는 우리는 걸어서 오르기를 자처하였고, 백두산의 열여섯 봉우리중 하나인 천문봉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엄청난 비바람을 만났지만 또한 삼두일족금오조(三頭一足金烏鳥)의 땅에서 백두산의 방광(放光-숙소에 안내장에는 佛光이라 적혔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장백폭포를 거쳐서 백두산 천지(天池) 용왕담(龍王潭)에 오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서 우리 조국의 상징인 일두삼족금오조(一頭三足金烏鳥)를 확실하게 만날 수 있었다.(바른소리 옳은소리 밝은소리를 참조). 백두산을 머리로 하여 삼대간(三大幹)으로 뻗쳐나간 세 산맥을 보았고 그 땅에 우리선조들은 삼한(三桓-三韓은 가차임)을 세웠으니 일민족삼국가(一民族三國家)를 이뤘던 옛 조상들의 태양 같은 지혜를 보았다. 한단고기(桓檀古記)의 구천년 역사가 풍수 지리적으로 입증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백두족(白頭族) 임을 일두삼족금오조의 삼한구이(三桓九夷)의 삼한구족(三桓九族)의 하느님의 천손(天孫)의 우두머리임을 명명백백하게 백두산 천지는 입증하고 있었다.

한민족 삼국가 체계(一民族三國家)였던 신한국(神桓國)

우리민족은 지금으로부터 약 9200년 전 한인(桓因)님께서 한국(桓國)을 세웠다. 이 한국은 지금 우리조국인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전 이름인 대한제국(大韓帝國)의 근원이 되었다. 현재의 한국(韓國)과 구분하기 위해서 이를 신한국(神桓國)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신한국은 진한 마한 변한의 삼한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삼한국의 뜻은 다음과 같다.

진한(眞桓-으뜸한-진선미) 마한(馬桓-머리한 마루한) 변한(弁桓-벼리한)

그중 진한이 삼한의 중심이었지만 국명은 모두 으뜸을 상징하는 진 머리 벼리로 되어있다. 한문은 가차일 뿐이다. 이렇듯 한민족이지만 삼국가의 연방제였다. 결코 삼국통일의 논리적 구성은 없다.

요즘으로 이야기 하자면 우리민족은 개국에서부터 연방제를 구성한 것이다. 곧 이러한 전통은 조선(朝鮮-편의상 고조선이라 불림)에도 이어졌으니 진조선 막조선 변조선이 그것이다. 이후 후삼한과 삼국역시 이러한 전통의 이어짐이었으니 신라의 삼국통일이념은 당나라적 발상이지 결코 우리 한족의 전통은 아니다. 이러한 일민족삼국가체제의 사상적 근거는 바로 일두삼족금오조(一頭三足金烏鳥)인 것이다

백두산 천지는 삼대간(三大幹)의 발원이자 한강(一江)의 발원지이다.

장백폭포로 떨어지는 물길은 쑹화강(송화강)으로 흘러들어 흑룡강에 합한다. 압록강과 두만강의 물길은 천지에서 흘러내리지 않는다. 곧 천지의 물길은 한강(일강)의 발원지이다. 그러므로 한반도는 대륙이지 섬이지 않다.

백두산은 삼대간의 발원지이다.

아시아 대륙을 향한 산맥 곤륜대간(崑崙大幹)
러사아를 향해 달리는 산맥 장잭대간(長伯大幹)
한반도를 향해 달리는 산맥 백두대간(白頭大幹)

진정한 우리의 풍수관을 반영한 삼두일족금오조.



앞서의 전제를 종합하면 우리조상들의 영토관은 삼두일족금오조의 관점이었다. 곧 백두산을 중심으로 삼대간을 따라서 삼한(三桓)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 년에 한번 진한(辰桓-가차음)을 중심으로 모여서 제천의식을 거행하였다.

지금의 음력 시월이 우리조상들이 상달(上月)이었다. 지금도 우리민족에게는 시제라 불리는 집안 윗 조상들의 묘제가 있다. 이것은 옛 조상들의 상달 민족적인 제천의식의 아직도 우리의 핏줄에 남아있는 흔적이다.

아! 다물을 향한 우리의 풍수관 하늘저울(天秤).

북진정책을 줄곧 표방한 우리 선조(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조선).

동서5만리 남북2만리의 영토를 갖추었던 우리조상들이 세운 한국(桓國-신한국)은 3301년간 지속되다가 한웅(桓雄)시대로 접어든다. 한웅은 배달(倍達)이라는 나라를 5900년 전 경에 세운다. 그래서 우리를 배달의 자손이라고 한다. 이 배달국은 1565년간 18분의 한웅이 다스려졌다.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붉은악마가 썻던 치우(蚩尤) 천황은 14대 한웅 자오지 천황을 지칭한다.

신한국과 배달국을 이룩하고 나서야 우리가 말하는 민족의 시조이신 단군왕검께서 조선을 세운다. 단군조선은 2038년간 왕검단군에서부터 고열가 단군까지 47명의 단군을 배출하였다. 이후 부여와 동예 옥저 그리고 후삼한 시대를 거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를 열었다.

지금 서기 2008년은 단기(檀紀)4341년이요 신시개천(거불한 한웅) 5905년(4341+1565-1) 한기(桓紀) 9205년(4341+1565+3301-2)이다.

국가 건립 순서로는 한국-배달국-조선국-삼국-남북국-고려-조선-대한민국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물주의(多勿主義)는 조선(통칭 古朝鮮)에서부터 나타난다. 37대 단군의 이름이 다물(多勿)이며 고구려 시조이자 동명성왕으로 알려진 고주몽의 연호가 다물(多勿)이다. 다물(多勿)이란 다물린다. 곧 “되찾는다”라는 순 우리글이다. 이러한 뜻을 지녔으니 이후 잃어버린 고토를 되찾는 운동을 다물주의라 일컬어 왔다. 이러한 다물의 정신은 후에 고려와 조선의 북진정책으로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묘청의 영토관 하늘저울(天秤)과 김부식의 배형국(行舟)에 숨겨진 진실.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식민사관이 역사속에 오염되어 들어오자 다물주의는 역사에서 사라진 듯 했다. 하지만 고구려의 후예 대조영의 대진국(大辰國-옛 조상들이 진한을 이었음을 표방함. 발해라는 말은 공식 국명이 아님)의 건설은 남북국시대를 열었고, 나아가 다시금 삼한구족의 다물주의가 변형된 형태로 역사에 재등장 한 것이 고려 태조 왕건의 북진정책(北進政策)이었다. 고려는 고구려를 이었다는 의미의 국명이었다.

고려 초 왕건의 건국이념은 바로 우리나라의 풍수관인 천칭관(天秤觀)을 토대로 한 북진정책이었다. 곧 옛 삼한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신라의 경주는 부적합하다는 것이며, 대륙경략을 위해서는 송악이 훨씬 적합하다는 풍수 관이었다. 곧 한반도는 저울인데 신라 경주는 저울추에 속하고 개성은 저울대 그리고 발해와 지나의 대륙은 저울에 다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이 동양식 삼칭저울관이야말로 한반도에 국한하는 영토사관에서 벗어나는 또 하나의 대국적 이론이었던 것이다.

단재 신채호와 육당 최남선의 대륙을 향해 울부짖는 호랑이.

우리민족주의 관점에서 바라본(한반도에 국한되지만) 영토관이 바로 88올림픽에 널리 알려진 호랑이관이다. 아시아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 모습으로 바라본 영토관은 일제식민지 풍수 관점인 토끼 설을 부정하고 민족적 투혼을 불사르려 한 우리 독립군들이 가지고 있던 영토 관이었다. 하지만 그전에도 호랑이로 보는 관점은 백두산은 예부터 동북간방(東北艮寅方)으로 불렸으니 이곳이야말로 호랑이와 산과 사람이 으뜸인 지역임을 표시한 것이다.

또한 동해안에 최초의 등대이자 일본인들의 손에 세워졌던 호미곶 등대가 있으니, 호랑이 꼬리라는 말인데 이 등대를 세운 사람들인 일본 사람들은 언제 토끼 꼬리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이 토끼꼬리야말로 일본의 천황이 된 연오랑세오녀가 넘어간 곳이라고도 하니 결국 호랑이를 토끼로 전락시킨 것은 일본이 스스로 비하한 꼴이니 역사는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사대주의를 합리화한 중국을 향해 절하는 노인설.

역사 속에서 최초의 식민사관적 영토관으로 등장한 것은 바로 행주형(行舟形)이다. 이 행주 사관이야말로 우리강토를 한반도에 국한시키는 꼴이 되었다. 이사관은 묘청의 천칭사관(天秤史觀-이에 입각하여 평양천도설을 부각시킴)을 깨부수기 위한 개성사대주의파로 대별되는 김부식 일파에 의해서 대두되었다.

이러한 반도사관은 이후 줄곧 천여 년 간이나 지속되었고, 나아가 사대주의 식민적 영토사관의 근거가 되었다. 사대주의 식민적 영토사관은 여기에서 더욱 발전하여 조선말기의 반청복명의 사대주의자들은 조선을 중국대륙을 향해 절하고 있는 노인으로 만들기에 이르렀으며 우리를 소중화라고 지칭하였다.

일제식민화를 합리화한 토끼형국의 한반도설.

일제의 우리나라 지배는 철저하게 사상개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풍수지리를 철저히 조사함으로써 이 땅의 산맥을 엉뚱하게도 지질도로 바꿔놓아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면서 백두대간은 낭림산맥 마천령산맥 태백산맥으로 배웠다. 이러한 왜곡 뒤에는 조선은 순진하고 착한 토끼라고 배웠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초등학교에서 만행되고 있는 일제의 식민정책이다. “착하고 여린 조선의 백성을 이 정의와 의리의 사나이 사무라이들이 지켜 주리라”고 말이다.

세계를 향해 포효하는 백두산 호랑이 한반도.

세계를 향해 포효하는 백두산 호랑이로 조국강산을 바라본 대한독립군들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특히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의 옛 역사(古代史)에 중점을 두고 민족정통성과 민족광복의 정당성을 입증하였다. 이렇듯 풍수관점은 너무도 뚜렷한 정신적 지주가 되기도 하고 사대주의가 되기도 한 것이다. 역사란 풍수 논쟁의 역사였던 것이다.



설산 최재 은 소개





최 재은(崔 宰銀)

경주인(慶州人) 용성부(龍城府) 남원태생(南原胎生)
호(號)는 설산(雪山), 원통산인(圓通山人-元通山人), 청사(靑蛇), 보림당주(寶林幢主), 백련주인(白蓮主人) 구봉산주(龜峰山主) 종남산인(終南山人) 등(等)

(현) 사단법인 환단사상연구소 소장 및 이사장.
(현) 환사련산하 열린행복우리학교 태학당주.
(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전담교수.

전북대학교 법과대학 학생회장 및 투쟁위원장을 역임 민주화 운동에 투신. 30세에 이르러 백우선인의 유지를 받들어 “동양사상연구소” “설산철학관”을 개소 개관하고 “바른 소리 옳은 소리 밝은 소리”기관지를 발간하여 역술인의 길을 걷기 시작함. 후학을 양성함과 아울러서 대한민국 휴전선 아래 국토를 돌면서 “제일강산 남조선 명당도”를 십년에 걸쳐서 제작함, 더불어서 동방삼교삼학의 요체인 역학을 정리 저술하기 시작하다. 무인년에 백두산 천지에 올라 일두삼족금오조(一頭三足金烏鳥)를 보았고 나아가 백두산의 뿜어내는 거대한 방광을 보았다. 그 방광이 화하여 백두산 삼신마고 할머니와 열여섯 동자로 변하는 것을 친견한 후 돌아와 (사단법인) 한단사상연구소를 창립하고 마침내 원통대방경(圓通大方經) 상(上)을 출간(出刊)하였다.

이후 (구)구봉초등학교를 인수하여 열린행복우리학교 태학당을 설립 개교하고 후학양성에 힘씀과 더불어서 대한민국 전국 명당 지도를 다시금 수정 보완하였다. 나아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을 비롯하여 여러 교육기관과 사회단체 등 강의 활동을 지속해 왔다. 더불어서 설산 풍수지리 강의집, 설산 주역 강의집 등 내부 및 외부 교재 수십 편을 집필하였다. 해마다 돌아오는 운세집(運勢集)을 펴냄과 더불어서 임진년 갑오년 백두산을 수 차례 다시 올랐다. 더불어서 丙申年에 중국 서안의 태백산 및 오악(五嶽-동태산 남형산 중숭산 서화산 북항산)을 모두 올랐으며 이를 토대로 하고 다시금 오십년의 연구와 공력으로 만복만덕(萬福萬德)의 후천개벽천하제일도(後天開闢天下第一圖)를 완성(完成)하였다. 그 결과를 하늘 소리 땅 노래인 천음지가(天音地歌)로 쓰기 시작해 마침내 2022년 임인년에 "명당의 원리 발복의 비빌“1권과 2권를 출간(出刊)하였다. 나아가 천음지가의 후속 권을 집필 중이며 나아가 천문 지리 인사의 다방면의 책을 집필 중이다. 원통대방경의 핵심인 선천문창후천부경을 후천도에 맞추어 마침내 후천설산천부경으로 거듭 정립하고 일오칠묘도수(一五七妙度數)를 만천하에 밝혔다.

주요저서 원통대방경(上), 명당의 원리 발복의 비밀1, 명당의 원리 발복의 비밀2, 내외 교육교재 및 강의집-설산 풍수지리 강의집, 설산 주역 강의집, “바른 소리 옳은 소리 밝은 소리”, “대원정각천지회통”, “자미두수도표”, “설산자미두수해제” “봉선”, “하늘소리 땅노래(天音地歌)”, “백두산여정기” “태산노정기” “태백산노정기” “후천개벽의 수도로 점지된 왼태극의 땅 전라도 전주”외 각 고을지 및 2017년 이후 17년간 매년운세집정리책자 등(等)을 출간 및 책자화하였고 후속 작업을 위해 .교육 및 집필 중.

여수 MBC방송 출연
티브로드 신년대담프로 출연
라디오교통방송 꿈풀이 상담등 여러방송매체에 출연.

사단법인환단사상연구소 열린행복우리학교
063)243-7246 010-3655-7252